파도를 견디는 것
이승현
2026
부산을 처음 마주했을 때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푸른 바다도, 도시의 풍경도 아닌 해안가에 놓인 테트라포드였다.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줄지어 파도를 받아내고 있었다. 누구도 그것을 아름답다고 부르지는 않지만, 부산의 바다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결국 그 묵직한 형상이었다. 화려한 풍경 뒤에서 거센 물결을 묵묵히 받아내는, 부산이라는 도시를 가능하게 한 진짜 주인공이었다.

이 작품은 그 풍경에서 출발한다. 아나모픽 기법으로 미디어월의 면이 꺾이며, 화면 너머에 거대한 파도가 휘몰아치는 방이 펼쳐진다. 사방의 벽을 때리는 거센 물결 한가운데, 황금빛 테트라포드 하나가 자리를 지킨다. 흔들리지도, 무너지지도 않는다.

테트라포드를 황금으로 빚은 것은 화려함을 위해서가 아니다. 늘 그 자리에 있어 좀처럼 보이지 않던 것을, 한 번쯤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고 싶었다. 거센 바다 앞에서 도시를 지켜온 묵묵한 것들. 그것이 내가 본 부산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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